2024/09/06 14:59 KST
도기보나라는 인공 언어를 아시나요? 캐나다의 번역가이자 아마추어 언어학도 Sonja Lang이 만든 최소주의 인공 언어로, 150개 가량의 단어만을 사용해 세상을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 실험 프로젝트입니다. 약 500명의 사람이 이 언어를 활발하게 사용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세상에 단어 수보다 사람 수가 더 많은 언어가 있다? 삐 슝 빠 슝)
사실 단어 150개만 배워서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이게 엄청 쉽고 단순한 언어인 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기보나는 언어 자체에 사람, 물, 먹다. 이런 아주아주 기본적인 단어밖에 없고 복잡한 개념들은 다 문장으로 표현해버리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하려면 오히려 보통의 언어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문장을 말해야 하게 됩니다.
대신 그렇게 복잡한 문장을 머리속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래 말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평소 두루뭉실하고 불명확한 단어들을 쓰면서 놓치고 있는 개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도기보나는 이런 명확한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체득시키기 위한 명상용 언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이 도기보나로 된 인상깊은 시를 하나 발견해 한국어로 잠깐 번역해 봤습니다.
ona li wawa li lawa li tawa
ali la ona li ken awen ala
ona li mute li suli li lon
li kama e moli
li weka e kon
tenpo
li lili
e musi e mi
e ken pali ali pi jan pali ni
tenpo li moku e tenpo mi sona
mi wile e tenpo tan wile mi pona
그것은 강하며 이끌며 움직인다
어떤 것에도 멈추지 않는다
많으며 크며 만연하며*(1)*
죽음을 불러오며
영혼을 깨운다
시간
은 줄인다
즐거움도 나도
그 일꾼의 모든 능력(2)도
시간은 내가 기억하는 시간(3)을 먹는다
나의 염원으로 말미암아(4) 나는 시간을 원한다
(1) 원문은 'li lon'(존재하다).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뜻에서 '만연하며'(덩쿨처럼 퍼져있음)로 옮김.
(2) 원문은 'e ken pali ali pi jan pali ni'(그 일하는 사람의 일의 할 수 있음, 그 중에서 모든 것을). '그 일꾼의 모든 능력'으로 옮김.
(3) 원문은 'e tenpo mi sona'(나의 시간, 그 중에서 아는 것을). '내가 기억하는 시간'으로 옮김.
(4) 원문은 'tan wile mi pona'(나의 소원, 그 중에서 좋은 것 때문에). tan wile mi pona 자체는 앞에 오는 문장 'mi wile e tenpo'(나는 시간을 원한다)를 꾸미기 위한 상투적인 문구로 이해됨. '나의 염원으로 말미암아'로 의역.